게임업계는 대략 10년 주기로 판도가 바뀌어왔다. 인터넷과 모바일이 그랬듯, 이번엔 생성형 AI가 세 번째 대전환의 파도로 꼽힌다. 2023년 6월 서울 강남구에서 앵커노드를 설립한 원재호 대표는 이 흐름을 타고 게임 개발을 사람 손의 한계에서 해방시키겠다는 목표로 창업 2년여간 상용 게임 9종을 선보이며 누적 매출 18억 원을 넘겼다.
원 대표는 “2023년 생성형 AI를 보면서 ‘이건 인터넷이 게임에 접목되던 때보다 더 큰 변화’라고 직감했어요. 이번 파도는 게임 개발을 사람 손의 한계에서 해방시킬 것이기 때문이죠.”라고 말했다.
26년 경력이 포착한 세 번째 파도
1978년생인 원 대표는 26년간 게임 개발 경력을 쌓으며 ‘퀴즈퀴즈’, ‘피파온라인2’, ‘킹덤오브히어로’, ‘페코팝’ 등을 일궈낸 베테랑이다. 그는 게임 제작비 증가와 개발 기간 장기화로 실패를 감당하지 못하는 업계가 기존 성공작을 모방하는 웰메이드 경쟁으로 흘러가는 상황을 문제로 짚었다.
원 대표는 “게임개발 프로젝트는 투입자본이 커질수록 더 소극적이고 안전한 방향을 추구하게 됩니다. 게임업계의 기존 성공작을 모방한 웰메이드 경쟁은 사람을 더 많이 갈아 넣으며 더 많은 자본을 투입하는 악순환을 불러왔어요. 이 문제는 대규모의 생산성 혁신이 있어야 풀 수 있는데, 생성형 AI를 접하며 이것이 그 해답이라고 생각했어요.”라고 설명했다. 이런 판단 아래 그는 2023년 6월 앵커노드를 설립했다.

GameAIfy와 선순환 구조
앵커노드는 게임 개발 경험을 가진 베테랑들이 AI 기술을 익혀 직접 게임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검증한 기술을 AI 게임 제작 솔루션 ‘GameAIfy’에 축적하는 구조를 갖췄다. 에픽게임즈를 롤모델로 삼은 이 방식은 게임 제작과 솔루션 개발이 서로를 강화하는 선순환을 만든다.
원 대표는 “실제 게임을 만들며 얻은 기술이 솔루션에 쌓이고, 강해진 솔루션이 다시 게임 개발을 앞당기는 선순환이 저희의 가장 중요한 차별점”이라고 말했다. 실제 성과도 데이터로 확인된다. 캐릭터 제작 기간은 620일에서 30일로 줄었고, 한 도시건설 게임에서는 10명이 1년 가까이 걸릴 그래픽 작업을 1명이 6일 만에 끝냈다. RPG 게임에서는 전통 방식으로 2년 걸릴 물량을 동일 인원이 5주 만에 완성했으며, 일부 작업은 생산성이 최대 300배까지 향상됐다.

투자유치와 대외 성과
앵커노드는 2024년 초 퓨처플레이로부터 시드 투자를 받았고, 지난해 초에는 퓨처플레이와 네이버 D2SF가 참여한 프리A 라운드를 마쳤다. 누적 투자유치액은 25억 원이며, 기업가치는 300억 원으로 평가받았다. 창업 2년여 만에 상용 게임 9종을 출시하며 누적 매출 18억 원을 넘겼고, 올해 목표 매출은 20억 원이다.
대외 성과도 이어졌다. 앵커노드는 지난해 코어 이노베이션 코리아에서 최우수상을, 아시아 AI 대상에서 수상했다. 해외 진출도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 GDC에 단독 부스로 참가했고, 올해는 일본 도쿄게임쇼에 단독 부스로 출전할 예정이다. 현재 임직원은 25명이다.
AI 시대, 사람의 몫으로 남는 것
원 대표는 소수 전문가로 구성된 조직을 지향한다고 밝혔다. 그는 “기회가 왔을 때, 작은 팀의 과감한 도전이 큰 성과로 이어지는 것을 지켜봐 왔다”며 “앵커노드는 소수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특공대’ 같은 조직을 지향한다”고 말했다.
그가 그리는 미래는 유튜브가 방송시장을 바꾼 것과 닮아 있다. 그는 “아주 작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딱 맞는 게임들이 쏟아지고, 그중 일부는 과거에는 상상도 못 할 성공을 거두는 세상, 그것이 ‘게임계 르네상스’입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AI가 모든 것을 대신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는 “AI를 쓸수록 단순한 작업은 줄어들지만, 판단하고 결정해야 할 일은 오히려 늘어나요. 특히 게임의 개성과 재미는 끝까지 사람의 몫으로 남을 겁니다. AI는 정답이 있는 문제에 강한데, 여기엔 정답이 없기 때문이죠.”라고 설명했다.

원 대표는 한국 게임산업이 도전할 용기와 다양성을 되찾기 위해 “실패해도 도전할 수 있는 안전망, 새로운 시도를 지원하는 투자, 그리고 스스로 만들고 싶은 것을 꿈꾸고 설계하는 크리에이터를 길러내는 교육이 필요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커리어 초반, 단 두 명이 시작한 게임이 전 세계 게임 역사를 바꾼 걸 지켜봤어요. 그때 우리나라는 온라인 게임의 종주국이었죠. 26년이 지난 지금, 이번엔 AI로 한국 게임이 다시 세계 최고가 되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지금도 현장에서 일하는 개발자이고, 끝까지 직접 만들면서 그 장면에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라고 밝혔다.
앵커노드는 상용 게임 9종을 통해 AI 개발 방법론을 검증하고, 이를 GameAIfy에 담아 산업 전반으로 확산시키는 단계를 밟고 있다. 게임 개발비 급증과 개발 기간 장기화라는 업계 공통 문제 앞에서, 직접 개발과 솔루션 개발을 병행하는 이 방식이 어떤 파급력을 낼지는 앞으로 나올 후속 게임과 GameAIfy의 확산 속도가 가늠자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