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채용 시장에서 코딩 테스트를 표준으로 만든 스타트업 그렙이 2027년 4월로 잡았던 상장 계획을 미루고 2028년 IPO에 도전한다. 그렙을 이끄는 임성수 대표는 2026년 9월 인터뷰에서 AI 역량 평가와 원격 시험 감독 솔루션 ‘모니토’의 글로벌 진출을 상장의 축으로 꼽았다. 프리 IPO 투자 유치를 거쳐 상장을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그렙은 코딩 테스트 플랫폼 ‘프로그래머스’를 2017년 내놓았다. 프로그래머스를 활용하는 기업은 1,400여 개이고, 누적 응시자는 81만 명을 넘어섰다. 임 대표는 국민대 컴퓨터공학과 교수이기도 하다. 공동창업자인 이확영은 카카오 CTO 출신이다.
생성형 AI로 코딩 테스트 수요 감소, 돌파구는 AI 역량 평가
그렙에 두 번째 위기가 닥친 것은 생성형 AI가 코드를 대신 짜주면서 코딩 테스트가 더는 중요하지 않다는 인식이 퍼졌기 때문이다. 그렙은 위기의 돌파구를 생성형 AI에서 찾았고, 지난 3월 구성원의 AI 활용 능력을 측정하는 ‘AI 역량 평가’를 출시했다. 프롬프트 기록을 바탕으로 채점하며 채점 기준은 4가지다.
출시 반년 만에 국내 대기업과 계약했고 미국 첫 고객도 확보했다. 그렙이 지난 6월 중견·대기업 인사담당자와 경영진 200명을 조사해 발표한 ‘2026 대한민국 기업 AI 역량 진단 리포트’에서는 응답자의 66.5%가 AI 역량을 측정할 기준이 없다고 답했다.
채용에서 교육·AX 진단·자격증으로
AI 역량 평가는 채용을 넘어 임직원 교육 효과 측정과 부서별 AX 진단으로 넓어지고 있다. 평가와 교육을 묶은 프로그램은 이번달 본격 출시됐다. 그렙은 AX 전문 조직을 꾸릴 계획이다.
임 대표는 평가와 교육의 연계를 차별점으로 설명했다.
“교육에 앞서 테스트로 수준을 확인해야 그에 맞는 교육을 설계할 수 있습니다. 지금 점수라면 무엇을 배워야 하고, 교육을 받으면 어느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게 중요하죠. 평가와 교육을 연계하는 것이 저희의 차별점입니다. 다만 지금의 평가와 교육은 범용적인 AI 활용 역량과 AI로 흔히 처리하는 업무를 다룹니다. 조직의 AI 역량이 실제로 높아지려면 그 조직의 업무와 프로세스를 파악하고 거기에 맞춘 교육이 필요합니다. 기업 교육도 고객사마다 맞춤형으로 만드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어요.”
내년에는 민간 AI 역량 자격증을 출시하고, 장기적으로 국가공인 자격을 목표로 한다. 그렙은 코딩 역량 인증 시험 PCCP·PCCE와 데이터 역량 인증 시험 PCSQL도 운영하고 있다. 임 대표는 AI 자격증 시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AI 자격증은 쏟아지고 있지만 대부분 지식을 묻는 데 그쳐, 실무 역량을 제대로 평가하는 자격증은 드뭅니다. 저희는 응시자가 실제로 AI와 일하는 과정을 보고 평가합니다. 자격증이 곧 AI로 일할 줄 안다는 증명이 되도록 하는 게 목표입니다.”

모니토, 팬데믹 원격 시험에서 출발해 LLM 적용
그렙은 팬데믹으로 응시자들이 한곳에 모일 수 없게 되자 원격 시험에서 답을 찾았고, 원격 시험 감독 솔루션 모니토를 개발했다. 모니토를 쓰는 대기업 등 기관은 약 1,000개이고, 모니토로 치르는 시험은 연간 3,600건 이상이다.
임 대표는 처리 규모를 이렇게 설명했다.
“출시 직후 한 시중은행 채용 시험에 쓰이면서 8,000명이 한꺼번에 접속했어요. 서버가 버티지 못해 전 직원이 달려들어 대응했죠. 그런 과정을 여러 번 거치면서 지금은 동시 접속 2만 명도 안정적으로 감당합니다. 이만한 인원을 한 번에 소화하는 시험 감독 서비스는 전 세계에서 저희밖에 없어요.”
지난해 11월에는 생성형 AI를 이용한 부정행위가 대학가 중심으로 늘자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영역의 부정행위까지 차단하는 ‘모니토 플러스’를 출시했다.
모니토는 처음에는 사람이 영상을 모두 지켜봤고, 이후 AI가 부정행위가 의심되는 장면을 골라내도록 바꿨다. 감독 인력은 크게 줄었지만 부정행위가 아닌데도 의심 장면으로 잡아내는 오탐이 많아져 사람이 다시 검토해야 했다. 그렙은 오탐을 줄이기 위해 LLM을 도입했고, 지난 5월 LLM 에이전트를 적용했다. 자체 테스트에서 사후 검토 시간은 30% 이상, 오탐은 20% 줄었다. 감독관은 고위험 정황만 검토한다. 그렙에는 수만 건의 부정행위 탐지 관련 영상 데이터가 쌓여 있다.
임 대표는 “시험 감독 솔루션에 생성형 AI를 적용한 곳은 전 세계에서 저희가 처음입니다. 부정행위를 잡아내는 AI 기술로는 글로벌 톱 레벨이라고 자신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LLM 적용으로 글로벌 AI 시험 감독 시장의 선두 그룹에 들어섰고, VLM까지 더하면 1위를 노릴 수 있다고 봤다.
VLM·AI 카메라로 글로벌 시험센터 공략
토익·토플처럼 컴퓨터가 늘어선 시험센터는 전 세계에 10만 곳 넘게 있다. 그렙은 이 시장을 겨냥해 지난해 8월 컴퓨터 기반 시험(CBT) 전문 기관 P사와 전략적 업무협약을 맺었다.
그렙은 이미지와 영상을 언어와 함께 이해하도록 학습한 AI 모델인 VLM(비전언어모델) 도입을 준비 중이며, AI 카메라 프로토타입은 완성했다. 시험센터용으로는 NPU 기반 소형 서버를 구상하고 있다. 시험센터 2만여 곳을 둔 한 글로벌 운영사와는 시범 운영을 논의하고 있다.
상장 일정 연기, 2028년 IPO 목표
그렙은 지난해 6월 NH투자증권을 상장 주관사로 선정하고 상장을 준비해 왔다. 당초 목표는 2027년 4월 상장이었으나, 올해 생성형 AI로 사업 환경이 크게 바뀌자 일정을 미뤘다. 누적 투자액은 132억 원이다.
임 대표는 코딩 테스트의 앞날에 대해서는 사라지기보다 제자리를 찾아갈 것으로 봤다.
“예전에는 일부 기업이 아무도 풀지 못할 만큼 어려운 문제를 주문하기도 했어요. 앞으로 코딩 테스트는 논리적 사고력과 소프트웨어가 돌아가는 원리를 이해하는지 확인하는 기초 역량 평가로 자리 잡을 겁니다. 미국은 이미 그 방향으로 갔습니다. 지금은 코딩 테스트를 한시적으로 없애는 국내 기업이 늘고 있지만, 결국 같은 길을 가리라고 봅니다.“
그렙은 프리 IPO 투자를 유치한 뒤 2028년 상장에 도전할 예정이다.